퇴직금 포기하면 4대 보험금 대납? "결국 둘 다 손해"

세계일보 0 111 05.25 20:45

생계에 쪼들리던 김모씨는 2007년 서울의 한 식당에서 홀서빙 일을 시작했다. 김씨는 식당 주인이 내민 근로계약서에 무심결에 서명날인했다. 계약서에는 ‘퇴직금을 포기하면 4대 보험료 부담분을 대신 납부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김씨는 이 계약서에 퇴직금 포기 조항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대신 식당 주인이 “4대 보험이 적용된다”며 김씨에게 “당신이 내야 할 보험료까지 대납해주겠다”고 약속하길래 그런 줄로만 알았다.
11년가량이 흐른 2018년 김씨는 식당 일을 그만뒀으나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식당 주인은 김씨가 서명한 근로계약서를 내밀며 “계약에 따라 퇴직금은 줄 수가 없다”고 버텼다. 결국 김씨는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낸 이후에야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다.

노동청은 “근로계약서에 퇴직금 포기 조항이 있다 하더라도 이는 무효라는 것이 대법원 판례로 굳어져 있다”고 식당 주인에게 설명했다. 굳이 재판까지 갈 필요도 없이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식당 주인이 억울함을 느꼈다. 4대 보험료의 근로자 부담분을 대신 납부해줬는데 근로계약서 내용과 달리 퇴직금을 다 줘야 했기 때문이다. 식당 주인은 “내가 대납한 4대 보험료를 돌려달라”며 김씨를 상대로 620만원의 부당이득금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퇴직금을 받아낸 기쁨도 잠시, 졸지에 거액을 물어내야 할 처지에 놓인 김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법률구조공단은 김씨가 처한 딱한 사정을 감안해 소속 공익법무관으로 하여금 소송 수행 등 법률적 조력을 제공하도록 했다.
26일 서울동부지법에 따르면 이 법원 재판부는 식당 주인이 김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려 김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만약 김씨가 식당 주인의 4대 보험료 대납액을 부당이득금으로 반환해야 한다면, 퇴직금 포기 약정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 없어 퇴직금 제도의 입법 취지가 없어진다”고 판시했다.

김씨를 대리해 소송을 진행한 이형주 법무관은 “영세 자영업자인 식당 주인과 영세민인 종업원 김씨는 퇴직금과 4대 보험료 대납을 둘러싼 쟁송으로 시간과 금전적 손해를 봤다”며 “조금이나마 생계에 도움이 되고자 사회적 약자 간에 이런 근로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지만, 결국 서로가 손해를 보는 만큼 근로기준법에 따라 근로계약을 맺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영세 자영업자와 종업원이 흔히 맺는, 퇴직금을 포기하되 4대 보험료 부담금을 대신 내주는 형태의 이런 계약은 결국 둘 다 손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법률구조공단 관계자는 “약자들 사이의 ‘꼼수’ 약정이 서로에게 독이 되고 있다”며 “근로기준법에 따라 정상적 근로계약을 맺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이라고 조언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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